-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실관계
원고들 중 일부는 1979경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구속취소로 석방되었고, 일부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당시 피고 대한민국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된 후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며, 형을 복역하다가 형 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되었다.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원고들은 위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를 하여 재심개시결정을 받았고, 이에 따라 개시된 재심절차에서 원고들에게 적용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으며, 그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여 국가배상을 구하였다.
2. 소송 진행 경과
(1) 원심
원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며,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 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
이와 같은 원심의 판결은 종전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및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등이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판결의 논조를 따른 것이기도 하였다.
(2) 대법원
대법원(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써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 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 및 이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평가하였고, 그렇다면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해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3. 평석
(1)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
대상판결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상 발령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유신헌법은 제53조 제1항, 제2항에서 긴급조치권 행사에 관하여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극복을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될 당시의 상황은 긴급조치관 발령의 대상이 되는 비상상황이라고 전혀 볼 수 없었고, 따라서 그 발령 자체가 목적상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또한, 설사 긴급조치 제9호가 발령 당시가 위기상황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은 표현의 자유와 청원권 등을 극심히 제한하고,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여 법치국가 원리를 부정하고 신체의 자유와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으므로,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이며 그 위헌성이 중대함이 명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위헌·무효인 법령에 기초한 수사기관과 법관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 및 이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그렇다면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나, 국가배상책임을 자기책임으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당시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요소를 완화하여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 특히 대상판결은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 그 행위는 본질에 있어서 기관행위로서의 품격을 상실하여 국가 등에게 그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다는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등의 취지를 변경하지 않은 채 이 사건 판결을 하였다. 그러나 다수의견의 결론을 보면, 위와 같은 판결을 변경하고 국가배상을 공법적 자기책임으로 파악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 논리적으로 명확했을 것이라 본다. 대상판결의 별개의견도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3) 관여 공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 있는지가 국가배상책임 인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위에서 보다시피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한 행위와 이를 적용·집행한 행위는 공무원의 공적직무수행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행정 조직이나 운영상의 결함으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고, 따라서 국가의 직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보기 충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관여 공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 있는지는 국가배상책임 인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이 국가배상책임의 인정과 관련하여 관여 공무원의 개인적인 잘못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의 경우 관여 공무원들의 개인적인 잘못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당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민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초래하는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고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집행하였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로써 이루어진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강제수사 및 공소제기 등의 국가작용은 모두 대통령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행위로써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된 피고인에 대하여 인신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 또한, 독립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법관은 긴급조치 제9호를 집행하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가 가능하였는데(유신헌법 제100조, 제102조, 제104조), 당시 법관들은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성 심사 없이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한 채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 명백한 불법적 수사절차를 그대로 묵인한 것은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책무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에 명백히 반하는 위법한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적용·집행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 및 적용·집행행위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의의가 있다.
다만,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기존의 국가배상의 대위책임적 입장을 견지한 채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을 인정한 것은 논리적으로 철저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국가배상책임은 헌법 제29조에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 공권이고, 국가가 공무원 개인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위책임이 아니라 국가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부담하는 자기책임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이해하는 것이 법치국가 원칙에 부합한다고 본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