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안의 개요
(1) 원고 5는 1979년 10월 25일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979년 11월 21일 구속취소로 석방되었다.
(2) 소외 1(사망, 원고 38, 원고 39, 원고 40, 원고 41, 원고 42, 원고 43, 원고 44가 그 가족들이다), 소외 2(사망, 원고 55, 원고 56, 원고 57, 원고 58이 그 가족들이다) 및 원고 1, 원고 6, 원고 13, 원고 18, 원고 23, 원고 28, 원고 33, 원고 45, 원고 59, 원고 68(이하 원고 5까지 포함하여 ‘이 사건 본인들’)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피고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며, 형을 복역하다가 형 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되었다. 원고 5를 제외한 이 사건 본인들은 유죄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를 하여 재심개시결정을 받았고, 이에 따라 개시된 재심절차에서 이들에게 적용된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으며, 그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3) 원고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구하였다.
2. 원심 판단
원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이 그 자체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며,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판결을 유지하였다.
3. 쟁점
(1) 대상판결의 주된 쟁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와 이를 적용·집행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이다.
(2) 종전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가 그 발령 근거인 구 대한민국헌법(유신헌법) 제53조에서 정하고 있는 요건 자체를 결여하였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써 위헌·무효라고 하더라도,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고,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였다.
(3) 이 사건은 위와 같은 과거의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판례를 변경할 것인지가 관심사였는데,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종전 판례들을 모두 변경하였다.
4. 대상판결
(1) 즉 대법원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되어 수사를 받았거나 나아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함으로써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고 하며, 종전 판례를 모두 변경하였다.
(2)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하여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할 수 있으며,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람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정하였다.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면서 긴급조치 제9호의 내용에 따라 영장 없는 강제수사와 이에 기초한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라는 절차까지 예정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집행하는 일련의 직무집행을 통하여 그 집행의 대상이 되었던 피해자들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즉,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한 기본권 침해는 침해의 근거가 되는 일반적·추상적 규범의 발령과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집행하는 일련의 직무집행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위법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와 긴급조치의 형식적 합법성에 기대어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집행하는 다수 공무원들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모여 이루어졌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발령행위 자체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과정에서 개별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개별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증명 또는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이처럼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 만약 이러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에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인 직무집행행위를 특정하고 그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엄격히 요구한다면 일련의 국가작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오히려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지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부담하고(헌법 제10조 제2문), 이는 유신헌법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유신헌법 제8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하여 신체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었다면 국가는 그 자신이 부담하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권 침해에 따라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남아 있다면, 국가에 그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뒤늦게나마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에 손해의 전보책임을 부담시킬 실질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의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요건 및 규정 내용에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위헌성이 명백하게 존재함에도 그 발령 및 적용·집행 과정에서 그러한 위헌성이 제거되지 못한 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는 등 구체적인 직무집행을 통하여 개별 국민의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 및 이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그렇다면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5. 검토
(1) 이 사건의 별개의견 중 수사기관과 법관이 당시 시행되던 법을 적용해 수사, 기소, 재판을 한 것에 대해 귀책사유를 인정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다만 법리 구성에 차이가 있을 뿐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은 동일했다.
(2) 법을 제정하고(입법), 집행하며(행정), 해석하는(사법) 모든 행위는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만약 잘못된 법을 만들고 집행하여 적용까지 했다면 당연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만약 국가가 이를 그르쳐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으로 합법의 탈을 쓰고 잘못된 폭력을 저질렀다면 국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그 사태가 있기 이전으로 되돌릴 의무가 있다. 따라서 당시 시행되던 법에 의한 수사와 재판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닌 이상 잘못된 법에 의한 수사와 재판이라면 국민은 결코 동의할 수 없으므로, 그로 인한 손해는 국가가 배상해야 함이 지극히 타당하다. 이 사건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에게 큰 난관이었던 입증책임의 문제도 어느 정도는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요컨대 대상판결은 견해를 변경함과 아울러 역사를 직시한 것으로 사료된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