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2. 8. 19. 선고 2017다292718 판결 -
1. 사실관계와 소송의 경과
대상판결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농어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에 의하여 설립하여 농어촌정비사업 등을 수행하는 법인인 원고는 그 소속 직원들의 승진시험을 외부업체에 의뢰하여 실시하였는데, 일부 직원들이 외부업체로부터 시험문제와 답을 제공받아 합격하고 그 대가로 금전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당 직원들에 대한 승진발령을 취소하였다. 그리고 해당 직원들을 상대로 승진 후 발령이 취소되기까지 받은 급여상승분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1심과 원심은 피고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하였다고 하더라도 승진한 직급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여 급여를 지급받은 이상, 피고들이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의 재산으로 인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그로 인하여 원고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와 항소를 각 기각하였다. 그러나 상고심인 대상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였다.
2.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은 “승진발령이 무효임에도 근로자가 승진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하여 온 경우,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있어 승진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지급되었다면, 근로자가 지급받은 임금은 제공된 근로의 대가이므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사용자가 이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어 승진 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가 승진 전과 견주어 실질적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직급의 상승만을 이유로 임금이 상승한 부분이 있다면, 근로자는 그 임금 상승분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고, 승진이 무효인 이상 그 이득은 근로자에게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으로서 부당이득으로 사용자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여기서 승진 전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 사이에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제공된 근로의 형태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법리를 설시한 뒤 이 사건 피고들이 승진 후에 수행한 업무가 종전 직급에서 수행한 업무와 차이가 없다면 급여상승분은 단지 직급이 상승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들에 대한 승진이 중대한 하자로 취소되어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상 급여상승분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부당이득으로서 원고에게 반환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3. 평석
1) 대상판결은 승진발령이 무효이거나 취소된 경우에 근로자가 승진의 유효함을 믿고 변경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제공하고 지급받은 임금이 부당이득에 해당하는지 판단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판결로서 의미를 가진다. 대상판결 이전 우리 대법원은 근로계약 자체가 취소된 경우에 근로계약에 따라 그동안 행하여진 근로자의 노무 제공의 효과를 소급하여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하였다. 승진이 무효이거나 취소된 경우도 근로계약이 취소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미 제공된 근로를 기초로 형성된 법률관계의 처리가 문제될 것이므로 기존 대법원 법리에 대한 소개와 함께 대상판결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2) 법률행위가 무효나 취소되는 경우 해당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 따라서 주고받은 급부가 있다면 이는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근로계약 역시 그 법적 성질은 사법상 계약이므로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있다면 법률행위 당사자는 근로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자가 이미 제공한 근로는 그 성질상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고, 그동안 행하여진 근로 제공의 효과를 소급하여 부정하게 되면 이미 지급받은 임금의 반환 내지 처리문제 등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 그래서 대법원은 2013다25194 판결에서 근로계약이 취소되더라도 이미 제공된 노무를 기초로 형성된 법률관계까지 효력을 잃는다고 보아서는 아니 되고, 취소의 의사표시 이후부터 효력을 잃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취소의 소급효를 제한하고 있다. 한편, 부당이득법리 관점에서도 사용자가 임금 반환을 청구하려면 손실이 발생하거나 그로 인하여 근로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었어야 하는데,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은 경우 근로자가 어떤 이익을 얻거나 사용자가 어떠한 손실을 입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어찌되었든 근로계약이 취소되더라도 근로자는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대가로 지급받은 임금이 있다면 반환할 필요가 없고, 미지급된 임금이 있다면 그 지급을 청구할 수도 있게 된다.
위와 같은 논리는 사용자의 의사표시인 승진발령으로 인한 법률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승진발령이라는 의사표시에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있으면 이를 기초로 법률관계를 형성한 당사자들은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할 수 있으나, 승진발령에 따라 이미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였다면 그 제공된 근로를 기초로 형성된 법률관계에는 무효 또는 취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본 사안에서는 승진발령의 기초가 되는 시험에서 직원들의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결과적으로 해당 직원들에 대한 승진발령이 무효·취소되었는데, 직원들은 승진발령 이후 그 발령이 취소되기까지 승진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면서 임금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직원들이 승진발령의 유효함을 전제로 직급에 따른 근로를 제공하고 지급받은 임금은 법률상 원인이 없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원고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없어 부당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3) 그런데 대상판결은 임금상승이 단지 승진으로 직급이 상승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뤄졌는지를 살펴본 후에 임금상승의 원인이 단지 승진이라면 승진이 취소된 순간 해당 임금상승분은 법률상 원인을 상실하므로, 승진을 통해 이루어진 임금상승분은 부당이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임금상승이 단지 승진을 이유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상판결과 원심의 판단이 달라진 이유는 부당이득의 요건으로서 근로자가 얻은 이익을 달리 파악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체적으로 원심은 근로자가 지급받은 임금 전체를 근로자에게 발생한 이익으로 파악한 후 이에 대하여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근로자가 얻은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상판결은 근로자가 지급받은 임금 전체가 아니라 승진 후 임금상승분을 근로자에게 발생한 이익으로 보아 그 임금상승이 오로지 승진을 이유로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근로계약의 취소된 경우와 달리 승진발령만 취소된 경우에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승진 전 직급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승진으로 받은 이익을 판단할 때에는 승진 전후 임금의 차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임금상승분이 승진을 이유로 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승진 전후 실질적으로 제공된 근로의 가치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제공된 근로의 형태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실제에서 승진 전후로 제공된 근로의 가치에 차이가 있는지는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형식적으로 정하고 있는 업무가 변경되었는지 여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행한 업무가 변경되었는지 여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익이나 손해는 실질적으로 파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 사안에서도 원고가 업무의 중요도,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직위를 구분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형식적으로는 승진 전후 직급에 따른 업무 변경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상판결이 원심판결을 파기한 이유는 실제 수행한 업무를 원심이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대상판결의 결론과 이유는 타당해 보이며 근로관계에서의 부당이득에 관한 법리를 승진발령이 취소된 사안에 맞게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