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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명 황승종
소속 변호사 방극성 법률사무소

-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1다239745 판결 -

 

1. 사실관계의 개요

원고 건설업자는 2012년 10월 12일 피고 건축주와 사이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는 ① 피고로부터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을 짓는 공사를 수급하는 것과 별도로, ② 피고가 기존 건물의 임차인들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임대차보증금 및 이사비 등을 대신 지급하여 주는 방법으로 피고에게 금전을 대여하기로 약정하였다. 즉, 하나의 계약을 통하여 원고와 피고 사이에 건축도급 관계(공사대금 채권) 및 대여금 관계(대여금반환 채권)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원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기존 건물의 임차인들에게 임대차보증금 및 이주비로 합계 9억 6750만 원을 지급하여 임차인들을 퇴거시켰다(피고의 ‘대여금 채무’).

원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른 건축공사를 완료하여 2014년 3월 6일 이 사건 건물에 관한 사용승인을 받았고(이 사건 제1심은 피고의 ‘공사대금 채무’를 10억 42만 8천 원으로 산정함), 위 공사대금 채권은 이 사건 계약 내용에 따라, 사용승인 후 4개월이 경과한 시점인 2014년 7월 7일에 그 기한이 도래하였다.

피고는 2014년 1월 13일부터 2016년 5월 27일까지 원고에게 합계 8억 2400만 원(이하 ‘이 사건 변제금’)을 변제금 명목으로 지급하였고, 변제충당할 채무를 지정하지는 아니하였다.

원고는 위 공사대금 채권의 이행기인 2014년 7월 7일부터 3년이 경과한 2017년 10월 19일 피고를 상대로 미지금 공사대금 및 대여금의 지급을 구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이 사건 변제금이 대여금 채무에 충당되었고, 공사대금 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하였다. 이에 원고는 이 사건 변제금이 대여금 채무와 공사대금 채무 모두에 충당되었므로 이로써 공사대금 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재항변하였다.

2. 법원의 판단

가. 쟁점

동일한 채권자에게 다수의 채무를 부담하는 채무자가 변제에 충당할 채무를 지정하지 아니한 채 모든 채무를 변제하기에 부족한 금액을 변제한 경우, 모든 채무에 대한 승인으로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이 있는지 여부

나. 원심의 판단

피고는 이 사건 변제금이 합의 내지 지정충당 또는 법정변제충당의 순서(변제이익)에 따라 모두 이 사건 대여금 채무에 충당되었으므로 공사대금 채무가 변제된 사실이 없고, 따라서 공사대금 채무에는 변제에 따른 채무승인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변제금의 지급과정에서 원고에게 공사대금 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을 표시하여 위 채무를 승인하였을 뿐, 합의 내지 지정충당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피고의 대여금 및 공사대금 각 채무의 이행기가 서로 동일하며 대여금 채무의 변제이익이 공사대금 채무의 변제이익보다 더 많다고 볼 사정이 없으므로, 이 사건 변제금은 위 각 채무에 안분하여 변제충당 된다고 판단하였다.

즉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한 이 사건 변제금은 각 채무에 안분하여 충당되었고, 이러한 일부 변제로써 두 채무 전부에 대하여 승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의 공사대금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도 중단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 대상판결의 내용

대법원은 시효중단 사유로서 채무승인에 관하여 “동일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다수의 채권이 존재하는 경우 채무자가 변제를 충당하여야 할 채무를 지정하지 않고 모든 채무를 변제하기에 부족한 금액을 변제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변제는 모든 채무에 대한 승인으로서 소멸시효를 중단하는 효력을 가진다. 채무자는 자신이 계약당사자로 있는 다수의 계약에 기초를 둔 채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변제 시에 충당할 채무를 지정하지 않고 변제를 하였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수의 채무 전부에 대하여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법리를 설시한 후, 이 사건 피고가 이 사건 변제금을 지급한 것이 대여금 채무와 공사대금 채무 모두에 대한 승인에 해당하므로, 그에 대응하는 채권 전체에 관한 소멸시효가 중단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대법원이 “원심이 법정충당과 채무승인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를 관련지어 판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한 점을 보면, 설령 대여금 채무의 변제이익이 더 많았기에 공사대금 채무에는 법정충당되는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변제충당과는 관계 없이 이미 전체 채무 중 일부를 변제함으로써 대여금 채무와 공사대금 채무에 대하여 모두 승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고 생각된다.

3. 대상판결에 관한 검토

가. 일부 변제를 통한 승인의 효력 범위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승인은 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를 상실하게 될 자에 대하여 그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고 일종의 관념의 통지로서 준법률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승인에는 특정한 방법과 형식이 요구되지 아니하므로 명시적이지 아니하더라도 채무자가 그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추단할 수 있기만 하면 족하다(대법원 1992. 4. 14. 선고 92다947 판결, 2005. 2. 17. 선고 2004다5995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는 일부변제로써 채무의 승인이 있었을 때 그 일부로 인해 어디까지 승인의 효력이 미치는 것인지 문제된다.

종래의 사례를 보면, 시효완성 전에 채무의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는 그 수액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한 채무승인으로서의 효력이 있어 채무 전부에 관하여 시효중단의 효력이 발생한다(대법원 2018. 11. 9. 선고 2018다250513 판결). 그러나 채무의 액수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상황이었다면 일부 변제로서 승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다36735 판결).

한편 기존에도 법원은 수 개의 금전채무가 있는데 채무 일부를 변제하는 경우에는 그 채무 전부에 관하여 시효 중단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으나(대법원 1980. 5. 13. 선고 78다1790 판결), 위 사안은 은행과 계속적으로 거래하면서 발생한 수 개의 채무였다는 점에서 ‘동일 당사자 간에 계속적인 금전거래가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소송법상으로는 별개의 소송물로 구성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권리의무관계’인 경우에는 일부에 대한 변제를 전부에 대한 승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른바 손해삼분설과 관련하여, 소멸시효 완성 전에 치료비를 지급한 사실이 있다면 그 소송물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일실수입과 위자료까지 포함하여 해당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채무 전체를 승인한 것으로 본 사례가 있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99105 판결).

나. 다수의 채무 중 일부변제가 있는 경우에 다수의 채무 전체에 관하여 그 존재를 모두 알고 있다고 ‘일반화’ 할 수 있는지

1) 이 사건의 경우에는 공사대금 채무와 대여금 채무가 하나의 처분문서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채무자가 두 채무를 합하여 자신의 전체 채무로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계약이라는 권리의무 관계에 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동일 당사자들 사이의 계속적인 거래가 있었던 사례와 유사하게 취급하든, ‘청구원인’이 다르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권리의무 관계에 기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취급하든, 전체 채무 중 일부만이 변제되었더라도 전체 채무가 승인된 것이라는 결론 자체는 타당해 보인다.

2) 그런데 대상판결은 일부 변제가 모든 채무에 대한 승인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그 논거로 “채무자는 자신이 계약당사자로 있는 다수의 계약에 기초를 둔 채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변제 시에 충당할 채무를 지정하지 않고 변제를 하였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수의 채무 전부에 대하여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개별 사안의 내용을 따져보지 않고, 위와 같이 채무자가 자신이 당사자인 ‘모든 채무를 통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는지가 의문인 것이다.

종래 판결의 사실관계와 같이 계속적인 거래(78다1790)라거나,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같이 한 개의 문서로 작성된 여러 개의 채무라고 한다면, 채무자가 다수 채무의 존재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추단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거래가 동일 당사자 사이에 간헐적으로 드물게 있었다면 과연 이렇게 일반화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대상판결의 일반화 논리에 따르면, 예컨대 채무자가 2022년의 후발적 채무를 갚기 위하여 변제금을 지급했던 경우에도 지정충당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10년의 시효가 완성 직전 상태에 있었던 2012년의 선행 채무까지도 한 번에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채권자의 시효중단 행위가 없는 경우라면, 채무자가 일부변제로써 소액인 채무는 변제하고 다액인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이익을 누릴 수도 있었는데도 단지 일부를 변제한 사실이 있다는 사유만으로 권리행사를 않고 있던 채권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채무액에 차이가 크다거나 변제기에 차이가 크다면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 일반화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3) 채무자가 다수 채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되거나 추단되면 그 귀결로서는 채무의 종류, 액수 등을 막론하고 일부 변제로써 채무 전체를 승인하였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채무자들이 ‘통상적으로’ 다수 채무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서, 일부 변제로써 수 개의 채무가 모두 승인된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라고 볼 여지가 있으며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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