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4924호 판결 -
1. 사안의 개요
피고가 2017년 12월 31일 원고 회사에서 명예퇴직하면서 원고에게 “퇴직 후 3년이 경과하기 전에 동종 경쟁업체에 취업한 경우에는 일반퇴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퇴직금 전액을 조건 없이 반환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각서(이하, ‘이 사건 각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원고로부터 명예퇴직금을 지급 받고도 2018년 9월 무렵 다른 회사에 취업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경업금지약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피고를 상대하여 원고로부터 지급받은 명예퇴직금의 반환을 청구한 사안이다.
경업금지와 관련한 각서의 문언을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사회적 형평을 구현한 판결례
2. 원심 및 대상 판결의 요지
원심은 이 사건 각서가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명예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한 경우’를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는 해제조건을 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명예퇴직의 해제조건 성취 여부는 ‘명예퇴직 후 3년 내 취직한 직장이 원고와 동종 경쟁관계에 있어 원고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부당하게 영업에 이용함으로써 원고에게 손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함에도 피고의 재취업으로 인하여 원고의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명예퇴직금 반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상 판결은 ①이 사건 각서의 해석과 관련하여, 그 문언 및 근로자에게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퇴직 후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의 전직이 금지되는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이 있어야 함에도 이 사건 각서에는 퇴직 후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의 전직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의무규정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여 이 사건 각서의 문언만으로는 곧바로 피고에게 경업금지의무가 부과된다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서의 작성 동기나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을 약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②위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의 성취 여부와 관련하여,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고, 원고가 명예퇴직을 선택한 직원들에 대하여 이 사건 각서를 자동적으로 징구받은 것으로 보이며, 원고가 지급한 명예퇴직금이 온전히 경쟁업체에 전직하지 않는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고가 기밀사항을 다룬 것으로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아니하며, 피고가 재취업에 이름에 있어 원고 회사에서 근무하며 습득한 정보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술이나 정보는 수년간 동종 업무를 담당하면서 통상 습득하게 되는 수준 정도로 보이고, 이 사건 각서에 따라 간접적으로 전직이 제한되는 기간이 3년으로 비교적 긴 사정 등을 종합하면 위 해제조건은 단순한 경쟁업체에의 재취업만으로는 부족하고 ‘재취업 직장이 원고와 동종 경쟁관계에 있어 원고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부당하게 영업에 이용함으로써 원고에게 손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으므로 피고는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이 성취되었다고 보이지 아니하고 또한 원고에게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이 정당하다는 판단이다.
3.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가. 경업금지약정과 관련한 문언 해석에 대하여
경업금지약정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근로자가 사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에 취업하거나 스스로 경쟁업체를 설립·운영하는 등의 경쟁행위를 하지 아니할 것을 내용으로 하므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그러한 약정의 효력을 사적자치 내지 계약자유의 원칙에만 맡겨 제한 없이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보호할 가치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및 체득한 지식과 정보, 경업 제한의 기간이나 대상 직종, 전직금지의 대가 지급 여부, 공공의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유효성의 요건이나 효력의 범위 및 한계를 유월할 경우 민법 제103조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별하여 경업금지약정의 존부와 그 약정의 유효성 여부를 나누어 판단하고, 만일 경업금지약정의 존재 사실이 인정된다면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나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근로자의 이익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가 될 수 있어 경업금지약정에 대한 무효 판단의 범위나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대법원 2009다82244호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각서가 경업금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여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대상판결의 지적과 같이 이 사건 각서의 문언상으로는 경업금지약정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아니한다.
또한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하고도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아니할 경우 그 문언 내용이나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칙,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 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특히 당사자 일방이 주장하는 계약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종전 입장을 감안하면, 이 사건 각서의 내용이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명예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한 경우’를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는 해제조건을 정한 것으로 판단한 대상판결은 타당해 보인다(대상판결의 참조 판결 대법원 2000다72572호).
나. 해제조건의 성취 여부 판단에 대하여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해제조건의 성취 여부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명예퇴직 후 3년 내 취직한 직장이 원고와 동종 경쟁관계에 있어 원고에서 알게 된 정보를 부당하게 영업에 이용함으로써 원고에게 손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피고가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명예퇴직의 해제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그 판별 기준으로서 피고에게 보장된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이 사건 각서의 작성 동기나 경위, 전직 금지의 대가 지급 여부, 피고가 원고 회사에서 습득한 기술과 정보의 정도, 3년이라는 전직 제한의 기간, 원고에게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존재하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였다.
결국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각서를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는 해제조건으로 해석한 후 다시 위 판별 기준들을 통하여 해제조건의 성취 여부를 판단하고, 대상판결의 위 판별 기준들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아니하여 만일 이 사건 각서가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한 것으로 평가되더라도 경업금지약정의 효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위와 같이 이 사건 각서에는 경업금지약정이 내포되었을 여지가 남아 있음에도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각서의 내용을 경업금지약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연후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해제조건의 성취여부에 대한 판별 기준으로서 원고가 명예퇴직을 선택한 직원들의 조기 퇴직을 도모하기 위한 공로금 성격의 돈을 지급하면서 이들로부터 이 사건 각서를 자동적으로 징구받은 경위, 이 사건 각서에 따라 제한되는 전직의 기간의 정도, 피고가 취업한 회사가 원고와 동종 내지 경쟁관계에 있지 아니한 사정, 피고가 원고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의 지위 및 재직 중에 지득한 지식과 기술의 정도 등에 비추어 피고의 전직으로 인하여 원고의 영업비밀 등 보호가치 있는 이익의 침해 가능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함으로써 보다 구체적 타당성과 공평의 원칙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결어
대상판결이 이 사건 각서의 내용을 ‘명예퇴직 후 3년 내 동종 경쟁업체에 취직한 경우를 명예퇴직의 효력이 상실되는 해제조건’을 정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그 문언과 그 취지에 충실한 해석으로 보인다.
또한 대상판결은 이 사건 각서에서 정한 해제조건의 성취 여부에 대한 판별 기준으로서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별하는 여러 기준들을 두루 심리한 후 퇴직한 근로자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될 여지가 있는 이 사건 각서를 제한적으로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을 도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