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1. 06. 17. 선고, 2018다257958, 257965 판결 -
1. 사안의 개요
대상 판결의 사실관계는 간단하다. 이 사건 보험계약의 계약자 겸 피보험자인 소외 망인은 2016년 10월경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리프트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보험수익자인 피고는 2016년 12월경 원고 보험회사에 원고가 정한 절차에 따라 상해사망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원고 보험회사는 망인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이유로 2017년 2월경 이 사건 보험계약을 해지함과 동시에 이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그 무렵 피고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본소를 제기했다.
“보험사가 제기하는
선제적 확인의 소는 적법
다만, 남용 방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 선행되어야”
2. 쟁점
대상판결의 주된 쟁점은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 등을 상대로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이익이 있는지 여부’다. 보험수익자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단순히 보험사고 여부나 보험금의 범위에 관하여만 다투는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선제적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타당한지, 즉 이 경우에도 과연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3. 판결 요지
가. 다수의견은, “확인의 소에서는 권리보호요건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있어야 하고 확인의 이익은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하는 데 피고를 상대로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에만 인정된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다툼으로써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불안·위험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면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하면서, “보험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계약상 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 그로 인한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하여 보험회사는 먼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설시한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현행 재판 실무를 옹호했다.
나. 그러나 반대의견은 보험의 특성과 당사자 지위 등을 고려해 다수의견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설시했다. 특히 반대의견은 현재의 관점에서 화두를 던지고 있으므로, 이 지면을 빌려 길게 소개하고자 한다.
즉 “소극적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확인의 이익의 공적인 기능이나 소극적 확인의 소가 채권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 모든 계약 관계에서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항상 채무자가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보험의 공공성, 보험업에 대한 특별한 규제, 보험계약의 내용 및 그에 따른 당사자의 지위 등에 비추어 보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보험수익자 등이 단순히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사고 여부나 보험금의 범위에 관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회사의 법적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가 이와 같은 사유만으로 보험계약자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극적 확인의 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적·공익적 측면에서 형평에 반하는 소송제도의 이용에 해당하여 확인의 이익이 결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보험회사가 소극적 확인의 소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보험회사는 정당한 근거 없이 보험금을 감액하거나 보험계약의 해지를 유도하기 위해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하기도 하고,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함으로써 보험계약자 등을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합의를 종용하기도 하며, 승소보다는 경영 목표의 달성이나 금융감독원의 민원평가 회피와 같은 사유로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어느 정도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즉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로부터 보험료를 먼저 받고 반대급부인 보험금은 나중에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그제야 보험계약자 등에게 지급한다. 보험료는 일정한 사고율을 전제로 수학적으로 산정되므로 보험사고가 예정보다 적게 발생할수록 보험금 지급 규모가 줄어들고 반대로 보험회사의 이익이 커진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보험사고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므로 보험회사로서는 이런 점을 이용하여 아예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협의를 통해 일부 감액하여 지급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이처럼 보험회사가 정당한 근거 없이 승소판결을 받기보다는 오로지 보험계약자 등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하여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거나 보험계약과 관련된 사정과 무관하게 오로지 자신의 경영 상태에 따라 보험계약자 등을 상대로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한 것은 소송제도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
따라서 보험계약자 등이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없고, 그 외에 추가로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를 즉시 확정할 이익이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비로소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어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때 ‘특별한 사정’은 예를 들어 보험계약자 등이 보험계약이나 관계 법령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상당성이 없는 방법으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함으로써 보험계약에서 예정하지 않았던 불안이나 위험이 보험회사에 발생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정될 수 있다. 또한 보험계약의 체결이나 보험금 청구가 보험사기에 해당하여 보험회사가 범죄나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되거나 될 우려가 있다고 볼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보험계약에서 예정하지 않았던 불안이나 위험이 보험회사에 발생한 경우에 해당하여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수 있다.”
4. 검토
가.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각종 생명, 손해 보험사들이 매년 소송에 쓰는 돈만 100억 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소송비용은 보험사에서 사업비로 분류된다. 사업비 증가는 보험료의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반전시켜 보면, 보험사가 자신에게 걸 소송의 비용을, 다름 아닌 소비자 자신이 지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비자의 돈을 가지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이 같은 불합리가 지속되는 현실에서,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보험사들이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는 현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시의성을 갖추고 있다.
나. 반대의견은 보험의 공공성, 보험업에 대한 규제, 보험계약의 내용과 당사자 지위 등을 고려해, 보험사가 선제적으로 확인의 소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하고, 이 경우에만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어 소극적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보험의 지급존부나 범위에 관한 다툼만으로는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고,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방법으로 지급을 요구하거나 보험사기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만 선제적으로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 반대의견의 논지에 매우 공감하며 사회적인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적어도 현행 실무의 면에서, 아직은 다수의견이 형식적 우위에 있다고 사료되는바, 먼저 반대의견이 제시하는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은 추상적이므로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또 다른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보험사의 선제적 확인의 소가 소비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오히려 적극적 변론 등을 통해 소비자가 승소하고 판결이 확정되면 다툼이 종국적으로 해결되고 보험금을 받는 것이 더 쉬워질 수 있다), 그것이 확인의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보험회사가 소송제도를 악용할 경우 소권 남용 법리 등 규제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현재까지는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다수의견이 더 일리 있기 때문이다.
라. 다만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받는 보험료와 이후 지급할 보험금은 돈의 문제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다. 보험사가 다름 아닌 소비자의 돈으로 선제적 소송을 남발하며 그 간절함을 눈물로 바꾸는 일은 분명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대의견의 문제의식은 사회적 담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즉 다수의견과 같이 재판의 실무는 현행처럼 하더라도(그것이 소비자에게 그렇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니까), 반대의견의 견해처럼 남용에 버금가는 선제적 소송들을 방지하고 규제하기 위한 사법적, 사회적 노력은 부단히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