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6다35833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들로부터 소송위임을 받아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소송을 수행하였다. 원고 제기 소송의 소가가 3억 6700만 원이었고, 착수금은 1인당 10만 원이다. 원고 제기 소송은 소외인의 500억 원이 넘는 횡령과 그로 인한 전국교수공제회의 파산으로 공제회에 퇴직금 등을 불입했던 피고들을 포함한 회원들이 손해를 입은 것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을 상대로 공제회 등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그 소송은 판결선고 시까지 소송 기간이 1년 5개월 이상 걸렸다. 원고는 준비서면을 7번 제출하고, 서증을 5번 제출하였으며, 9번의 사실조회신청을 하는 등 소송수행을 하였지만 패소했다. 원심은 원고와 피고들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변호사 보수 3850만 원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변호사 보수를 2000만 원으로 감액하였다.
2. 대상판결
가. 판결요지
[다수의견]
변호사의 소송위임 사무처리 보수에 관하여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약정이 있는 경우 위임사무를 완료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약정 보수액 전부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의뢰인과의 평소 관계, 사건 수임 경위, 사건처리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인하여 얻게 된 구체적 이익, 그 밖에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약정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 청구의 제한은 어디까지나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원은 그에 관한 합리적인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관 김신대법관 조희대의 별개의견]
민법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제103조), 불공정한 법률행위(제104조) 등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를 개별적·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하는 민법 제398조 제2항과 같이 명시적으로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법률 조항도 존재한다.
그러나 신의칙과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2조 제1항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할 뿐 이를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민법 제2조의 신의칙 또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형평의 관념은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무효로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신의칙 또는 형평의 관념 등 일반 원칙에 의해 개별 약정의 효력을 제약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시장경제질서 등 헌법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
3. 대상판결의 검토
가. 변호사 보수에 관한 법령의 규율
1949년 제정된 변호사법 제17조는 ‘변호사는 현저히 불상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 ’라고 규정했다. 대한변협은 1983년 ‘변호사 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을 시행하였다. 1999년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은 개별법률에서 정한 변호사, 행정사, 세무사 등의 보수 규정이 삭제되었다. 그 결과 변호사의 보수는 당사자와 계약에 의하여 결정되게 되었다. 민법은 수임인의 보수청구권을 규정하고 있으며(제686조), 변호사법은 재판·수사기관의 공무원에게 제공하거나 교제한다는 명목의 비용을 변호사 선임료·성공사례금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제110조)을 둔다. 보수의 기준과 종류 등에 대해서는 대한변협 회칙과 변호사윤리장전에 규정되어 있다.
나. 변호사의 보수계약을 부인하는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
대법원은 일관되게 변호사 보수계약은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위반되면 상당한 액수를 초과하는 부분은 무효로 본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의 효과는 법률행위를 전부 무효로 하므로, 이 규정들을 통하여 변호사 보수 제한에 관한 적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고, 신의칙을 적용하여 그 보수를 제한하는 것에 비하여 우월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위 제103조, 제104호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더라도 소송위임계약에서 정보 불균형, 교섭력의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약정 보수액이 지나치게 많아 그 청구를 예외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근거로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명백하게 민법의 무효 규정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일부 무효의 법리를 유지해 가고 있다.
다. 변호사 보수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논거로서의 ‘합리적 근거’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실정법의 규정을 고려하고, 법의 흠결이 있을 때 비로소 법의 일반원칙 등을 찾아야 한다. 다수의견은 법원이 적정한 결론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신의칙에 기대어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을 함부로 수정·변경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애매한 신의칙 조항에 의지하여 보수약정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보수청구를 제한할 때는 합리적 근거를 명확히 밝히면 신의칙을 적용함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우려는 해소된다고 한다. 법관이 제시하는 ‘합리적 근거’를 보수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이유로 삼는다. 이는 법관이 새로운 법을 창설하는 것이고, 이미 존재한 법조문을 실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라. 변호사 보수계약 효력은 민법 제103조, 제104조로 결정해야 함
일찍부터 필자는 변호사 보수계약이 신의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계약이 무효로 되는 법리는 우리 민법상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민법 제103조와 제104조에 위반되는 경우에만 무효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형근, 변호사법 주석, 331면). 다행히 이번 대상판결의 별개의견에서 동일한 견해가 나온 것은 다행스럽다. 실제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약정을 민법 제103조 위반이라고 무효라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위임계약은 유상·무상계약이든 당사자 쌍방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위임계약의 본질상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이를 해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호사의 수임약정은 매우 불완전한 계약이다. 그런데 약정한 보수까지도 법원에서 무리한 법리 적용으로 감액시키고 있으니,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분쟁에 휘말리기 쉬운 직업이 되었다. 따라서 변호사의 보수계약이 제104조 폭리행위에 해당되면 무효, 그렇지 않으면 유효라고 해야 한다. 제104조의 요건이 엄격하기에 법원이 손쉽게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만약 제104조를 적용한다면 그 요건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기에 법원은 함부로 보수계약을 무효로 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사적자치로 보장되는 보수계약의 자유도 확보될 수 있고, 다른 종류의 (보수)계약과도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마. 변호사의 보수액을 결정·허가하는 법원이 분쟁양산
변호사의 보수계약은 결국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현실이다. 법원이 신의칙, 형평의 원칙이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약정한 보수를 감액해 주다 보니, 계약한 보수를 지급하기보다는 일단 지급 거절을 하고, 재판에서 과다한 보수라고 주장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의뢰인 중에는 이런 법원의 입장을 악용하여 재판을 마친 후에 소송대리인을 상대로 보수분쟁을 이어간다. 만약 약정된 보수액이 과다하다고 그 액수를 대폭 감액해버리면 변호사는 계약자유도 없는 셈이 된다.
판례는 모든 계약에서 신의칙을 근거로 약정한 반대급부의 규모를 조절하지는 않는다. 유독 소송위임계약에서만 비교적 쉽고 광범위하게 변호사 보수를 감액해 왔다. 부동산 중개수수료 약정은 부동산중개업법 법령에서 정한 한도를 초과하는 범위 내에서만 무효이지만(대법원 2005다32159), 변호사 보수는 규제 법령도 폐지된 상태라서 오로지 당사자 간의 계약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구조다. 법관이 재판 결과에 따라 변호사 보수액이 결정되는 비교적 익숙한 분야라고 하여,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은 변호사를 다른 직역과 차별하는 행위에도 해당된다. 법원은 법령의 근거도 없이 변호사가 받을 적정 보수액을 허락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