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7다213838 판결 -
1. 대상판결
계약상 채무의 이행으로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급부를 행하였는데 계약이 무효이거나 취소되는 등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에 당사자들은 각기 상대방에 대하여 계약이 없었던 상태의 회복으로 자신이 행한 급부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의 원상회복의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민법 제741조 이하에서 정하는 부당이득법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기능의 하나이다. 이러한 부당이득제도는 이득자의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갖지 못한 경우에 공평·정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득자에게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므로, 이득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귀속된 바 없다면 반환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7다213838 판결).
2. 검 토
가. 가령, A가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B에게 돈을 이체하였고, B는 자신이 비트코인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알고 A로부터 받은 돈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하여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르쳐준 전자지갑으로 송금하였다. 이 경우 A는 B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나. 대상판결의 “실질적 이득이 귀속된 바 없다면 반환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는 표현에 따른다면, 일응 B는 실질적으로 취한 이득 자체는 없으므로 A는 B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그러나 판례는 착오 송금의 경우 일관되게 아래와 같이 판단하여 실질적 이익의 유무와 관계없이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관점에 따른다면 A는 B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의 사이에서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 즉 예금반환청구권자로 보아야 한다. 또한 예금거래기본약관에 따라 송금의뢰인이 수취인의 예금계좌에 자금이체를 하여 예금원장에 입금의 기록이 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수취인이 수취은행에 대하여 위 입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그리고 이때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계좌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좌이체에 의하여 수취인이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하여 위 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다41263,41270 판결 참조).
라. 나아가 대상판결은 무권대리인이 본인을 대리하여 상대방으로부터 급부를 수령하고, 본인은 당시 의사무능력 상태에서 계약 체결 및 급부 수령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사안(을(乙)은 1차계약 체결 직후인 2015년 2월 15일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고 이에 따라 병(丙)과 아들인 정(丁)이 을을 대신하여 2차계약을 체결한 사실, 갑(甲)은 2차 계약이 체결된 당일 계약금 1억 1000만 원을 병에게 지급하였고, 위 병은 위 계약금을 수령하였다는 취지의 영수증을 작성하여 갑에게 교부한 사안)이므로, 위 대상판결을 A의 B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부정하는 근거로 곧바로 원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 결론적으로, 계좌에 입금된 금원이 소비되어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금명의인이 그 금원을 사용·수익·처분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B의 계좌에 현재 남은 돈이 없는 것은 B가 스스로 A로부터 입금받은 돈을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였기 때문으로, 대상판결과 같이 B의 무권대리인이 직접 금원을 수령한 사안이나 B의 관여 없이 B의 계좌에 입금된 돈이 인출된 사안과는 명백히 구별된다(이계정, 송금된 금원에 대한 예금 명의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 유무의 판단기준, 민사판례연구(35), 제561쪽 내지 제608쪽 참조).
바. 현재 이른바 보이스피싱 범죄에 관한 형사실무는, 가담형태 등을 불문하고 가담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러한 실무의 적절성은 별론으로 하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전자금융거래법 등의 현행 법률이 이러한 엄격한 실무의 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러한 근거 법률은, 형사는 물론 민사에 관한 계좌 이체된 금원에 관한 부당이득법리에 있어서도 ‘불명확한 재량’이 아닌 ‘단순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