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의 소개로 갑 회사에 30억 원을 대여해주면서 “갑 회사와 원고 간 체결한 금전소비대차 계약 내용이 진행되지 못했을 경우 대여금의 원금을 대위변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피고 명의 확인서(이하 ‘이 사건 확인서’)를 받았는데, 당시 피고 회사의 이사회 규정에 의하면, ‘다액의 자금도입 및 보증행위’를 이사회 부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었으나, 소외 1이 원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하여 줄 당시 피고의 이사회 결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원고는 갑 회사가 변제하지 않자, 피고 회사에게 이 사건 확인서에 기재된 대로 보증인으로서 30억 원을 대위 변제하라고 소를 제기했고, 피고 회사는 ‘회사 정관상 확인서 작성에 기재된 대여금의 대위변제 행위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피고 대표이사인 소외 1이 그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아 확인서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심 법원은 회사와 거래하는 상대방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거래에 필요한 내부 절차를 밟았을 것으로 신뢰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는데, 이 사건에서 원고가 이 사건 확인서 작성에 관하여 피고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는 어려워, 이사회 결의 없이 피고 대표이사 소외 1이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확인서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보았고, 대법원도 원심 법원의 판단을 지지하며, “대표이사가 회사 정관 등 내부 규정에 위반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는 물론, 상법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선의인 거래 상대방은 보호되지만 거래 상대방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면 신뢰를 보호할 가치가 없으므로 거래행위는 무효”라고 판시하면서 기존 판례를 모두 변경했습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일정한 거래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 거래 상대방인 제3자가 어떠한 범위에서 보호되는지 여부입니다.
3.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가. 다수의견은 ① 어떠한 거래행위가 제393조 제1항이 정한 사항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적당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등)이 있기는 하나, 대표이사와 거래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해당 거래행위가 대표이사의 결정에 맡겨져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② 대표이사가 회사를 대표하여 거래행위를 할 때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므로 거래 상대방인 제3자의 신뢰는 이사회의 결의를 필요로 하는 근거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데, 이사회 결의를 요구하는 근거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인지 아니면 정관 등 내부 규정인지에 따라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달리한다면 법률관계가 불분명하게 될 수밖에 없어 회사를 둘러싼 거래관계에 불필요한 혼란과 거래비용을 초래한다는 점, ③ 주식회사에서 이사회 결의는 회사 내부의 절차이고 제3자가 회사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위험을 대표 이사와 거래한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④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의 법률상 제한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내부적 제한에 따라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지는 거래 상대방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개별적으로 고려할 요소 중 하나일 뿐, 이러한 구별을 이유로 대표이사의 행위를 신뢰한 제3자를 보호하는 기준 자체를 달리 정할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나. 반대의견은, ① 상법 제209조 제2항은 상법 제393조 제1항과 같이 법률에서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한 경우에까지 적용될 수는 없다는 점, ②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선의·무과실에서 선의·무중과실로 변경하는 것은 거래안전 보호만을 중시하여 회사법의 다른 보호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일뿐더러, 중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는 종래 민법 제756조 또는 상법 제210조에 따라 인정했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결국 이사회 결의가 흠결된 회사와의 거래행위에 대하여 거래 상대방의 악의나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거래행위를 전부 유효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극히 일부의 사안에서는 거래행위를 전부 무효라고 볼 수밖에 없어 분쟁해결의 탄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판례의 변경을 반대했습니다.
다. 대상 판결의 다수의견에도 타당한 점이 있기는 하나 거래 상대방에게 선의·무중과실을 요구하는 경우는 민법에서도 흔하지 않고, 법령이 이사회 결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거래 상대방의 주의의무와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은 거래 상대방의 보호범위를 불필요할 정도로 지나치게 확장하는 것이어서 반대의견과 같이 판례 변경에 반대하는 취지입니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