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두66541 판결 -
1. 서론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공공계약을 체결하면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 외에 별도로 ‘일정 기간 자신이 시행하는 입찰에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조치(이하 ‘거래제한조치’)’를 부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 대법원은 그 이유에서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 인정 여부에 관한 법리를 설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원자력 발전용 케이블 구매입찰에서의 입찰담합행위를 이유로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2항에 따라 2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았고, 공기업인 피고는 같은 처분을 이유로 피고의 내부 규정인 ‘공급자관리지침’ 에 근거하여 ‘공급자등록취소 및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조치(이하 ‘이 사건 거래제한조치’)’를 하였으며, 원고는 이를 다투는 항고소송을 제기하였다.
3. 대상 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이 사건 거래제한조치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되는지 여부였고, 이에 관해서 대법원은 피고의 공급자관리지침은 공공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제정·운용하는 내부 규정으로서 그것에 따른 거래제한 조치도 피고가 등록된 공급업체의 법적 지위를 일방적으로 변경·박탈하는 고권적 조치라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거래제한조치는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인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제1, 2심 모두 그 처분성을 인정), 그 이유에서 “계약당사자 사이에서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위하여 일정한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계약해지, 위약벌이나 손해배상액 약정, 장래 일정 기간의 거래제한 등의 제재조치를 약정하는 것은 상위법령과 법의 일반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되며, 그러한 계약에 따른 제재조치는 법령에 근거한 공권력의 행사로서의 제재처분과는 법적 성질을 달리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어떤 제재조치가 계약에 따른 제재조치에 해당하려면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그러한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공공기관과 그 거래상대방이 미리 구체적으로 약정하였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여러 거래업체들과의 계약에 적용하기 위하여 거래업체가 일정한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장래 일정 기간의 거래제한 등의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특수조건 등의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하였다고 하더라도,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규제법’)’ 제3조에서 정한 바와 같이 계약상대방에게 그 중요 내용을 미리 설명하여 계약내용으로 편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하며, 공공계약에 부가되는 거래제한조치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그에 관한 규정을 계약상대방에게 설명하여 계약 내용으로 편입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법상 제재조치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계약특수조건 등의 계약조항에 이 사건 거래제한조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보아 사법상 제재조치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4. 검토
공공계약이 사법관계일지라도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거래제한조치와 같은 공익성 확보를 위한 권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 법률관계의 조속한 안정과 권리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행정소송이 국민의 권리구제에 민사소송보다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거래제한조치가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닌 ‘계약당사자 사이의 합의된 계약 내용’에 따른 경우에는 기본적 법률관계를 사법관계로 보는 이상 거래제한조치를 처분으로 보지 않고 사법상 제재조치로 보는 것이 공법과 사법의 경계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며, 처분성 여부 판단 기준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와 동지인 대상 판결의 이유에 찬동하는 바이다. 다만 거래제한조치를 계약 내용으로 보려면 약관규제법상 설명의무까지를 요건으로 하는 부분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공공계약에 부가되는 거래제한조치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직접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 수 있으나(대법원 1998. 3. 24. 선고 97다33867 판결), 거래제한조치가 무효임을 전제로 특정한 입찰에 참여하기 전에 입찰참가자격지위확인을 구할 수 있어(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0다83182 판결) 국민의 권리구제를 어렵게 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5. 결론
대상 판결의 이유가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공공계약에 부가한 거래제한조치를 처분이 아닌 사법상 제재조치로 인정하였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국가기관인 조달청이 국가계약에 부가한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을 인정한 판례로는 ‘대법원 2018. 11. 29. 선고 2015두52395 판결’ 참조), 대상 판결을 계기로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에 관한 판결이 누적되면서 그 법리가 확고히 정립되었으면 한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