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04. 4. 23. 선고 2004다8210 -
1. 대상판결
민법 제587조에 의하면, 매매계약이 있은 후에도 인도하지 아니한 목적물로부터 생긴 과실은 매도인에게 속하고, 매수인은 목적물의 인도를 받은 날로부터 대금의 이자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매매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꾀하기 위하여 매매목적물이 인도되지 아니하더라도 매수인이 대금을 완제한 때에는 그 시점 이후의 과실은 매수인에게 귀속되지만, 매매목적물이 인도되지 아니하고 또한 매수인이 대금을 완제하지 아니한 때에는 매도인의 이행지체가 있더라도 과실은 매도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므로(대법원 1992. 4. 28. 선고 91다32527 판결 참조) 매수인은 인도의무의 지체로 인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바와 같이, 피고들이 2002년 4월 30일까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와 건물을 명도하여 주기로 약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피고들에게 매매잔대금을 전부 지급하였다는 주장과 입증이 없는 이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수인인 원고는 매도인인 피고들에 대하여 매매목적물의 인도의무의 이행지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검 토
가. 『채권법각록(제2판, 송덕수)』 180, 181쪽 참조 - 물건으로부터 생기는 과실은 그것을 수취할 권리자에게 귀속하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102조). 그런데 민법은 매매의 경우에는 과실과 이자의 복잡한 법률관계를 정리하기 위하여 목적물을 인도하기 전에는 그것으로부터 생긴 과실이 매도인에게 속한다고 규정한다(민법 제587조). 이는 수취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결과 매도인은 그가 목적물의 인도를 지체하고 있을지라도 매매대금을 완전히 지급받고 있지 않는 한 목적물을 인도할 때까지의 과실(법정과실 포함)을 수취할 수 있다(대판 1992. 4. 28. 91다32527, 대판 2004. 4. 23. 2004다8210). 그러나 매매목적물이 인도되기 전이라도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한 때에는 그 이후의 과실은 매수인에게 속한다고 새겨야 한다(통설·판례도 같음. 대판 1993. 11. 9, 93다28928). 만약 이때에도 매도인에게 과실수취권을 인정하면 매도인은 2중의 이득(대금의 이자와 과실)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과실은 대금의 이자에 대응하는 것으로 관념되는 것이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인도하지 않았으면 매수인이 대금 지급을 지체하더라도 인도가 되기 이전 기간 동안의 목적물의 관리보존비의 상환이나 매매대금의 이자 상당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고(대판 1981. 5. 26. 80다211, 대판 1995. 6. 30. 95다14190), 매수인이 대금을 완전히 지급하지 않은 때에는 매도인의 이행지체가 있더라도 매수인은 인도의무의 지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대판 2004. 4. 23. 2004다8210).
나. 판례의 위와 같은 민법 제538조의 해석에는 기본적으로 동조한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위와 같은 법리를 적용하면 공평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대전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매도인 갑과 매수인 을이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최근 6.17 부동산대책에서 이른바 갭투자 등을 차단하기 위해 경기·인천·대전·청주가 규제지역으로 추가 지정된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건 아파트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시가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이에 갑은 을이 잔금 지급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부동산 사무소를 약속한 날에 방문하였음에도 부동산 사무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다시 날짜를 잡았지만 갑은 그때도 부동산 사무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과 을은 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할 때 특약사항으로 을은 병에게 위 부동산을 임차할 예정이라는 문구를 기재하였고, 실제 을은 병으로부터 계약금을 받은 상황이다. 결국 갑의 이행지체로 인해 을은 병에게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해주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도 을이 갑에게 부동산인도청구만 할 수 있을 뿐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 있다. 물론 을이 공탁 등을 통해 미리 잔금 지급 의무를 다하고 손해배상을 구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을이 공탁을 하면 병에게 상환한 배액의 계약금과 병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차임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 있고, 공탁을 하지 않으면 이를 묻지 못한다는 것도 어색하다. 가령 을이 공탁을 하고 병에게 계약금 배액을 상환하면 이에 대해서는 갑에게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고, 을이 병에게 계약금 배액을 상환하고 공탁을 하면 이에 대해서는 갑에게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을 것인데, 양자는 사실상 동일함에도 우연한 사정으로 을의 손해가 달라지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