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0. 15. 선고 2014가합17034 판결
1. 사실관계
소외 망인은 1985년 2월경 기아자동차에 입사하여 2008년 1월경까지 간이금형반에서 금형세척작업을 고유업무로 수행하다가 2008년 2월경 현대자동차에 전출되어 근무하였다. 망인은 2008년 8월경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받고 투병 중 2010년 7월경 사망하였고,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 망인의 처와 자녀 2명은 유족급여를 지급받았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가 노동조합과 체결한 각 단체협약에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망인의 처와 자녀 2명은 기아자동차에 대해 작업과정에서 화학물질인 벤젠노출기준 위반 및 미교육 등으로 근로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면서, 그 중 자녀 1명은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기아자동차(주위적)와 현대자동차(예비적)에 대해 채용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이하, ‘채용청구’)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판결
1심 법원은 피고 기아자동차에게 망인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하였다며 손해배상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피고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망인의 자녀에 대한 채용청구에 대해서는 근거가 되는 단체협약을 무효로 판단하여 기각하였다. 후자는 노동법의 적용과 해석상 논란이 예상되는데, 무효로 판단한 근거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단체협약의 내용이다. 특별채용에 관한 단체협약의 규정은 실질적으로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노동자의 지위상속을 허용하는 취지인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인적 신뢰관계와 조화되지 않는 규정이다. 민법 제657조는 이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여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노무청구권의 양도 또는 노무제공의무의 제3자에 의한 이행을 금지하고 있다.
둘째, 단체협약의 대상 여부이다. 기업이 그 활동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는 노동력을 재배치하거나 그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므로, 인사권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 및 그 밖에 근로조건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에 한정되고, 기업경영과 인사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단체협약은 업무능력과 관련없는 요건 충족에 의해 불특정인을 근로자로 채용할 것을 강요하는 규정으로 사용자의 고용계약 체결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이다.
셋째, 특별채용에 관한 단체협약의 내용이 사회질서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단체협약은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효력을 가진다.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가 되는 반사회질서 행위는 그 내용 자체가 반사회질서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표시되는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인 경우 등을 포함한다. 청년실업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기회의 평등한 제공을 위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체협약을 통해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사실상 귀족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한다. 특히, 피고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량기업으로 그곳에의 취업은 많은 청년들이 바라는 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 단체협약의 취지는 사망한 유족의 생계보장을 위한 것으로 일응 그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으나, 유가족들에게 생계보장이 필요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아니하고 일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직계가족 1인에 대한 채용의무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능력적 측면에서 어떠한 요건도 요구하지 아니하여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3. 채용조항의 사회적 이슈로 발전
오래전부터 일부 공기업 또는 대기업에서는 장기 근속한 자 또는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녀의 채용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으로 우대하거나 업무상 재해를 당한 조합원의 가족들을 채용하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두어 왔다. 오늘날 청년층의 취업률이 저조하고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 고용되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에서, 이러한 단체협약상 채용조항에 관해 ‘고용세습 또는 현대판 음서제도’라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조직력이 강한 대기업 생산직 노조가 활동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그 비판은 매우 강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경영계 또는 해당 기업이 아니라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촉발시킨 측면이 강하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수 없으나, MB정부 시절부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활동한 노동계 또는 노동조합에 대해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그 후 ‘경남 진주의료원사태’를 정점으로 하여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 조직된 노동조합의 특권으로 여론화시켰다. 그리하여, 2015년 4월경 고용노동부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의 용역결과에 기초하여 단체협약상 채용조항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결여하거나 과도한 인사·경영권의 제약이므로 적극적으로 시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노동계는, 정부와 여당이 노동조합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위법적인 조치라고 비판하게 된다.
4. 평석
단체협약상 채용조항의 문제는 법의 해석의 기준에서 타당하거나 부당한지가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로 단체협약의 자치와 한계, 단체협약의 대상 여부, 채용규정의 유형과 반사회질서라는 기준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단체협약의 자치와 한계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자율적으로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된 사항에 관해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그에 따른 법적 효과도 발생시킴으로써 노사관계의 안정을 추구한다. 여기서 협약자치란 대체로 단체협약의 당사자가 단체교섭을 통해 어떤 내용 또는 기준으로 합의할 것인지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조합원 상호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하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규정하는 것처럼 강행법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거나 전체 법질서에서 금지하는 것은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2)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의 대상
노동관계법에서 단체교섭의 대상에 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어떤 내용에 대해 단체교섭 또는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 해석론이 대립한다. 또한 노동조합은 그 범위를 확대하려고 하지만 사용자는 이를 좁게 해석하려고 한다. 이를 결정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론적 근거가 있고 아주 어려운 사항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노사의 자율 또는 단체협약의 자치에 맡기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사용자의 인사권에 속하는 사항이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는 법규정도 없으므로 단체교섭 또는 단체협약의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인사권에 속하는 사항은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원칙적으로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설명하면서 독일의 경우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보면 타당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틀릴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독일에서는 취업규칙이 없으며, 인사권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대표위원회와 합의하거나 협의하여 처리하며, 일정한 사항에 관해서 합의 또는 협의가 성립되지 않으면 노동법원의 결정을 통해 처리된다. 독일에서 집단적 노동관계는 산별노동조합과 사업장의 근로자대표위원회가 이원적으로 형성되고,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많아서 일부만을 가지고 비교하여 인사권을 우리나라의 단체교섭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3) 채용규정의 유형과 반사회적 질서
일반적으로 단체협약상 채용(고용)조항이라고 하지만 이를 그 내용에 따라 세분하여 판단해야 한다. 첫째, 장기 근속한 자 또는 조합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하는 경우이다. 둘째, 정년퇴직하거나 조합원의 자녀를 다른 자와 비교하여 채용에 필요한 가산점 등을 부여하는 것이다. 셋째,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자의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경우이다. 강행법규 또는 사회적 질서에 관한 그 의미는 시대적 요청과 국민적 정서에 따라 변화되며, 또한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에 따라서 입장 차이도 생긴다. 따라서 공기업과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차이점, 고용조항의 구체적인 내용과 취업희망자 등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서 위의 첫째와 둘째의 경우는 사회적 질서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취업의 기회를 상실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이라고 하여도 업무상 재해를 당해 사망한 가족을 위한 채용규정은 다르게 평가될 여지가 많다.
4) 결론
위 판결에서 설시한 이유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채용에 관한 사항이 회사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단체협약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이다. 인사권의 내용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는지에 입장대립은 가능하지만, 이를 제외할 이유는 없다. 이 사건에서 노동조합이 회사의 인사권을 부정한 것도 아니며 노사합의를 통해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가족을 채용하기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또한, 업무상 재해를 당한 조합원의 가족을 고용하기로 한 단체협약의 내용은 민법 제103조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만약 단체협약에서 오래 근무한 조합원의 가족을 특별채용하거나 가산점을 준다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이고 안정된 직장인 피고들 회사에 취업하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형평성이 의심스러워 단체협약의 효력이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를 당해 가족의 생계에 영향을 받게 된 조합원과 그 가족을 위해 특별 채용하도록 노동조합이 활동하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를 민법상 반사회적 질서위반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은 단체협약의 자치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고, 또한 사회적 질서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항소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